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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욕망은 창의적인가- 닮음의 가지 수만 늘려가는 모방 레이스 게시물 내용 보기
제 목  우리의 욕망은 창의적인가- 닮음의 가지 수만 늘려가는 모방 레이스
서 명  닮은 방들
작성자  ○○○  조회 : 2652  작성일 : 2013-06-21

닮은 방들(박완서 작)

닮음의 가지 수만 늘려가는 모방 레이스

 



르네 지라르가 제시한 욕망의 삼각형 이론의 핵심은 어떤 인물의 욕망이란 독창적인 것이 아닌, 타자가 이미 욕망한 것을 모방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 접촉이 일어나 경쟁관계가 성립하는 것을 내면적 간접화라고 하는데 이 경우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는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기 때문에 주체와 중개자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작품 안에서의 '나'와 철이 엄마는 바로 이런 관계에 놓여있다.

'나'는 아파트에 이사 오고 난 후 철이 엄마에게 실내 장식이며 요리며 살림에 관한 것을 습득해간다. 처음에는 철이 엄마에게서 배운 요리로 어머니의 칭찬을 받고 철이네 집과 비슷한 인테리어에 만족하지만 얼마 못 가 그 비슷함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철이 엄마를 통해 둘러본 다른 집들도 비슷한 살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공간의 집합체로 완성된 아파트는 획일적인 공간이 연속으로 쌓여있는 형태에 다름없다. 그곳에 거주하는 철이네와 상하좌우의 집들은 '나'의 집과 비슷한 동선을 따라 생활하며 취향까지도 닮아있다. 그나마 피아노, 세탁기 같은 사물의 유무만이 동일한 그들의 공간을 미약하게나마 구별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모방욕구에 휩싸인 각각의 주체들이 곧이어 그것을 구입하고 따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경쟁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은 그것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똑같은 것을 소유하는 순간 혼자만의 기쁨은 사그라지고 만다. 닮음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똑같은 것을 사들이고 학습하는 그들은 남들이 따라하지 못할 만한 획기적인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녹록치가 않다. 똑같은 크기와 형태로 설계된 공간에 사는 그들의 생활수준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슷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그네들은 이웃들이 넘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마련할 뿐이고 이웃들은 역시나 그것을 따라한다. 애초의 목적은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였지만 결과적으로 남과 닮기 위해 하루하루를 소비하며 닮음의 가지 수만 늘려가는 셈이다. 닮지 않음에 대한 공포로 남들이 가진 것을 똑같이 소유하고 난 뒤에는 반대로 닮음에 대한 메스꺼움으로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그들의 욕망은 그래서 결코 독창적일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주체와 매개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차이만을 두고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가며 갈등적 관계가 되어갈 뿐이다.

철이 엄마의 희열이 주택복권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철이 엄마를 따라서 복권을 구입하지만 당첨에 대한 기대보다는 철이 엄마가 당첨될까봐 전전긍긍해한다.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철이 엄마를 향한 증오가 깔려있는 것이다. 또한 ‘철이 엄마가 당첨된다면’으로 시작한 상상은 단순히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했다는 질투를 넘어서 닮음의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강렬한 시기를 동반하고 있다. 이는 주인공이 그만큼 닮음의 공간에 질려버렸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자신의 쌍둥이 아들조차 구별할 수 없는 혼란 상태에 빠져든 ‘나’는 닮음에 대한 공포마저 느끼게 된다.


철이 엄마에게 얼굴 마사지를 해주는 동안 '나'는 단지 철이 엄마를 아프게 할 목적으로 자신의 연애 시절을 끄집어낸다. 이 때 철이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는 혐오감이 잔뜩 묻어나고 있는데 이는 철이 엄마가 '나'에게 갈등적 경쟁상대로 확고하게 자리했음을 보여준다. '나'는 딴 사람과는 달리 부드러운 속살을 노출시키고 있는 그가 불쌍해 보여서 슬펐고 그래서 좋았다고 말한다. ‘그 누구와도 비교도 없이 단 둘이 바라보는 것’을 너무나 사랑했던 연애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닮음이 지배하지 않고 고유의 것으로 존재할 수 있던 시간들에 대한 '나'의 동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갑각류처럼 견고하고 무표정한 여느 사람들을 닮아있다. 처가에서 독립하기 위해 돈을 버는 7년 동안 그는 남들을 닮아가며 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슬픈 얼굴로 대문을 열러나갔던 '나'의 울음은 끝내 촉발되지 않는다. 그는 당당할뿐더러 경도 높은 쇠붙이처럼 단단하고 냉혹해 보일 뿐이다. 어쩌면 예전의 순수함과 새로움을 잃어버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닮음에 대한 싫증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철이 엄마가 그의 남편을 두고 ‘짐승 같은 새끼’라고 표현하는 순간 묘한 생동감과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움은 '나'로 하여금 통제할 수 없는 충동이 되어 결국 철이 엄마의 남편과 간음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입고 있는 파자마, 포마드 향, 담배냄새, 가학적인 섹스스타일까지 자신의 남편을 빼닮고 있음을 발견한 뒤 절망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처녀처럼 느낀다. 자신을 옥죄어오는 획일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절박한 욕망이 투영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윤리마저 져버린 거울 속 자신은 이제껏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충격과 신선함을 함께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만약 주인공이 더 좋은 아파트나 주택으로 이사를 간다면 이 지긋지긋한 닮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곳에도 이미 비슷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을까? 재화와 서비스가 대량생산되는 현대사회에서 다름을 추구하기란 가능한 일일까?

매개자를 모방하려는 욕구를 충족한 주체는 얼마 안 가 닮음의 권태를 느끼고 새로운 것을 마련하지만 곧 그것을 모방하려는 주체의 등장으로 다시 닮음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주체와 매개자라는 입장변화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생활수준의 사람들은 닮음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공간을 완전히 벗어난다 하더라도 도시 안에서는 또 다른 닮음의 공간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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