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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묶여 '외'로 떠밀리는 코끼리들 게시물 내용 보기
제 목  사슬에 묶여 '외'로 떠밀리는 코끼리들
서 명  코끼리
작성자  ○○○  조회 : 2571  작성일 : 2013-06-21

코끼리(김재영 저)

험난한 삶의 굴곡은 두뇌에 히말라야 산맥처럼 남아…




배경지식- 이주노동자가 돈을 벌지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이유


네팔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사한 생김새에 불교 신도가 많아 온화한 성격을 지녔다는 인식이 많다. 멋진 나라라는 환상을 가지고 치열한 고용허가제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진단, 기술연수, 한국어시험 준비 등 한국에 오기까지 공식적인 준비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는데 모든 준비단계에 브로커가 끼어들어 돈을 챙기기 일쑤라고 한다. 결국 빚을 내어 우리나라에 온 근로자들은 빚을 갚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만 하고 때로는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지정된 사업장을 벗어나 딴 일자리를 얻으면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은 다시 임금체불, 인격모독으로 이어지며 이주노동자는 단속과 추방이란 불안에 떨며 열악한 근로환경과 숙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코끼리의 상징성


「동남아 국가, 특히 태국의 대표적 관광 상품인 코끼리는 여행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동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유달리 순한 성격과 정형화된 묘기는 어릴 적부터 어미와 강제로 분리되어 온갖 학대를 당한 결과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네 발이 사슬로 묶여지고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야생성을 버리고 인간에게 복종할 때까지 피가 흐르도록 쇠꼬챙이로 찔리는 고통을 받으며 훈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길들여진 코끼리는 사람들의 이윤을 위해 4~50년의 긴 세월을 서커스, 트레킹, 벌목에 동원되다가 나이가 들면 버려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세는 이 코끼리의 운명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물리적ㆍ언어적 폭력은 물론 초과근로에 강제로 투입되며 산업재해로 신체가 훼손되면 쓸모없는 물건으로 취급되어 쫓겨나는 것이 다반사다. 우주의 기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코끼리처럼 작품 속 노동자들은 쉴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을 짓누르는 노동의 무게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들은 이름 대신 ‘시발놈’으로 불린 지 오래이며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봉합할 비용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불법 체류자라는 사슬에 묶여 사람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은 한국에서의 3년이 30년 악몽으로 재현될 것만 같다고 말한다.

산업연수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하루 열여섯 시간을 혹된 노동에 시달렸던 쿤, 그러나 지금은 손가락마저 잘려버린 쿤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인의 극악무도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손가락이 잘리고도 웃어버리고 마는 쿤의 모습은 숱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 반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비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들은 부당한 현재에 지쳐 평화로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고국을 떠났던 이주노동자들은 지금의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벅찬 상황이며 아카스의 아버지는 기침이 멈추지 않으면서도, 나달나달해진 폐를 쓰다듬으며 하루 수백 개의 전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인공적인 불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병색이 짙어져간다. 그러나 아카스는 그런 아버지가 불쌍하면서도 밉다고 생각한다.

그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갖은 수치와 모욕은 아카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작용한다. 아카스가 겪어야했던 험난한 삶의 굴곡은 두뇌에 히말라야 산맥처럼 남아 두뇌회전이 빠르지만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가는 아이로 성장하도록 했다. 아버지를 도울 수 없을 만큼 어리고 나약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아버지를 향한 불만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당찬 모습을 유지하며 잔인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나열하면서도 중간중간 엿보이는 엄마에 대한 아카스의 그리움과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은 읽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특히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물에 탈색제를 풀어 세수를 하는 부분은 아카스가 감당해야 할 차별의 무게가 죽음 직전의 처절함과도 같은 것임을 느끼게 한다. 네팔에 가본 적이 없어서 고향에 관한 꿈조차 꿀 수 없는 아카스는 그렇게 상상 속에서조차 도피할 수 없고 현실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나이의 아이가 결코 짊어질 수 가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비극성은 작품 후반부에서 절정에 치다룬다. 먹고 살기 위해 처절한 발버둥으로 거짓말과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 아카스와 노랭이 앞가슴에서 심장을 뜯어내듯 지갑을 뺏는 비재 아저씨의 모습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외’에 빠진 비참한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 동료마저도 돈을 위해서라면, 아니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자본을 취득할 수 있다면 기꺼이 죽일 수 있다는 그들의 처참한 절규는 우리들의 가슴에 경종을 울린다. 1960년대 독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야 했던 우리나라의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떠올린다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지금처럼 무자비하게 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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