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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하나다 게시물 내용 보기
제 목  가슴에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하나다
서 명  존재의 형식
작성자  ○○○  조회 : 2431  작성일 : 2013-06-21

존재의 형식(방현석 저)

- 가슴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



단순히 작품 안에서만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것들(좌익, 민주화 운동, 베트콩) 때문에 금세 걱정이 앞섰다. 동시에 베트남 역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대략적으로도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을 한숨 쉬듯 자각하며 글을 읽어나갔다. 한 발 물러서서 큰 역사적 맥락 안에서 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나 작품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는 ‘존재의 형식’이 의미하는 바가 거대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레지투이의 말들을 통해 미숙한 해석이나마 개진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작품 안에는 좌익적 이념을 꾸준히 좇아 살고 있는 창은(자유주의자라 칭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할 능력이 부족)과 현실에 부단히 발붙이고 사는 문태, 마음속에 불씨를 간직하면서도 거부와 도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재우,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차분한 목소리로 확고히 그려내고 있는 레지투이가 있다. 주인공 재우가 어떠한 외로움 때문에 우리나라를 떠났고 어떠한 이유로 하필 베트남을 선택했는지는 확실하게 나타나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재우가 내뱉은 말과 창은에게서 느낀 자신보다 더한 외로움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언제 명예를 잃은 적이 있었나요?, 불명예스러운 건 지난날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야……」

이른바 그것은 좌파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충분히 명예로운 일에 몸을 던졌다고 생각한 일들에 대해 이제 와 보상을 바라는 것은 재우에게는 엄청난 수치였다. 민주화운동을 이끌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이익은, 숭고의 이념을 향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불사른 그들에겐 오히려 명예로운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보상을 받는다는 건 명예로운 지난날을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먹칠하는 것이 된다. 이를테면 온전히 자신의 기쁨 때문에 기꺼이 시간과 체력을 할애한 일에 대해 누군가 보상을 한답시고 돈을 내밀 때, 일순간 자신의 행동이 고작 이런 식으로 평가된다는 불쾌감에 잔뜩 일그러질 얼굴과도 같은 것이다.

재우가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한때 한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동료들이 바로 이러한 보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들의 행위와 보상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인과관계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재우는 이제 비열한 물욕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여전히 잘났어요」라고 질시를 날리는 동료들, 현실에 자신을 뿌리내리며 변질되어가는 동료들의 배신을 바라보며 재우는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상적으로는 완벽하나 소련의 붕괴로 결코 사회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는 믿음이 보편화된 현실……. 현재로서는 자본주의가 최선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인권유린, 인간의 도구화, 열악한 노동환경 또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흐름 속에서 재우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신음하는 여러 명의 희생으로 한 사람이 자본을 끌어 모으는 구조,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선심 쓰듯 미개한 정책 하나 던져놓고 외면하는 정치권은 창은이 계속해서 노동운동을 벌이는 이유이며 재우를 괴롭게 하는 기저로 작용한다.

재우는 그러한 현실 앞에서 도피라는 수단을 택했고 창은은 여전히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하여 재우는 창은에게서 자신보다 더한 외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동료들의 변절을 비겁하다 생각하면서도 정작 베트남으로의 회피라는 안일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부끄러운 자의식이 꿈틀댐을 느낀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재우가 마음속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불씨는 조금의 동기만 부여받으면 언제라도 활활 타오를 강력한 것이므로 재우는 자신의 신념을 눌러놓고 단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는 현재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베트남 노동자를 신발로 때리는 한국인을 목격하고부터 더욱 극렬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재우의 앞에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레지투이가 나타나고 재우는 ‘존재의 형식’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게 된다. 이상적인 존재에 걸맞은 합당한 형식을 규정하며 문태를 비겁하다 여기고 창은에게서 부끄러움과 함께 노선을 달리한 것에 대해 불만을 느낀 재우에게 그의 등장은 다름을 받아들이며 화합의 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레지투이는 지난 상처에 연연해 현실감각을 상실하지도, 과거의 슬픔을 망각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재와 과거의 소통을 시도한다. 참전용사이면서도 격정적인 무용담 하나 꺼내지 않고 차분하지만 굳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그, ‘반레’를 필명으로 시를 쓰고 전쟁의 참혹함과 먼저 간 전우의 삶을 영상으로 제작하며 살아가는 레지투이의 모습 위로 재우는 노동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창은의 모습을 중첩시킨다. 그리고 오래 전 창은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변해가는 환경 안에서 과장된 말을 늘어놓지 않으며 행동으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는 둘의 모습은 재우에게 새삼스런 자극과 충격으로 돌아온다. 옳다고 생각한 기준에서 비껴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들의 인생은 말이 아닌 삶 그 자체로 재우의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결코 타인의 신념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진득하게 펼쳐갈 뿐인 그들의 인생은 재우에게 부끄러운 자기반성뿐만 아니라 ‘존재의 형식’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준다.

옳고 그름에 대한 일방적인 기준에 갇혀 타인과의 거리를 스스로 넓혀간 것은 아닐지 반추해보던 재우는 그렇기에, 속물이라고 취급했던 문태가 실은 골프도 칠 줄 모르고 구치터널에 갔다는 소리를 듣고 기쁨을 발견한 것이다. ‘존재의 형식’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존재’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자의 가슴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그들은 실상 하나로 묶여있는 존재들이나 다름없었다. 변화된 외부환경에 얼마만큼 팔다리를 뻗고 있느냐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었다. 재우는 베트콩이든 창은이든, 과거의 자신과 문태이든 결국 인간다운 삶을 위해 그토록 투쟁을 벌여왔다는 걸 자각하면서 ‘존재의 형식’의 다양함을 인정하게 된다.

전우들의 삶을 한번이라도 더 재조명하기 위해 증선산맥을 관광상품으로서 홍보하길 바라는 일본방송의 요구를 받아들인 레지투이처럼 재우 또한 형식의 다름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먼저 간 동료들의 삶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 레지투이마저 변화하는 환경에 어느 정도 발맞추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레지투이가 대사 하나하나 신경 쓰며 동료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그 장엄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재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형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각자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본질의 불꽃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그 본질이란 것은 레지투이의 말처럼 삶의 기본조건들을 충족받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에 가까웠단 걸 깨달으며 좀 더 유연한 사고로 나와 동료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더불어 베트남의 풍경은 재우가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교훈을 선물해준다. 오토바이의 동력으로 함께 움직이는 자전거, 어깨동무, 잡상인을 내쫓지 않는 삶의 형식, 레지투이의 말까지…….

단지 외국 군대가 베트남 사람과 대지를 유린하지 않는 세상을 바랐다는 그의 고백은 과거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동료들의 모습과 연결된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투쟁’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재우로 하여금 그의 말처럼 친구들과의 우정, 맛있는 음식 등 기본적인 삶의 규칙과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 필수적이고 소중한 행복으로 작용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러한 인식 안에서 재우와 창은과 문태와 레지투이 등 존재의 불꽃이 살아있는 각각의 형식들은 하나로 화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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