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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내가 배운 것을 보태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색을 5가지로만 표현한다. 푸르다. 누렇다. 붉다. 검다. 희다. 작가는 1권에서 다섯가지 색들을 다뤘다. 빨강은 정열적이고 남성적인 색이다. 그에 대비되는 파랑은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색이다. 공중 화장실의 표지판은 뒤바뀌었다. 과연 그럴까? 어떤 색상을 두고 정확히 하나의 의미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적 약속에 의해서 빨강을 경고의 표시로, 파랑을 물의 색상으로 여긴다고 해서 물이 파란색이 되고, 빨간색이 위험한 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동양, 특히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검정을 물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색의 상징과 의미는 경험에 의해서, 본능에 의해서 바뀐다. 우리가 아는 빨강은, 파랑은 원색이 아니다. 우리의 파랑은 청자의 초록 빛깔과 같았을 수도 있다. 서양의 dragon과 동양의 용은 다른 생명체이다. 서양의 blue와 우리말의 파랑은 다른색이다. 다만 대체할 만한 다른 단어를 찾은 것이고, 또한 세계 표준색을 맞춰 그것이 옳다고 지정했을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우리는 단어로 논리성을 찾고, 예컨데 색의 이름을 정해 그것을 대체로 정확하게 공유하지만, 그것은 편리에 의해 왜곡되었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언어를 초월해 보다 객관적이고 본능적인 메세지를 준다는데 있다. 우리 조상님들은 왜 색을 5가지로만 표기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색이 많다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언어에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랑을 옐로우 오렌지나, 카드뮴 옐로우, 레몬 옐로우같은 식으로 표기하기 보다, 누르스름 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의이자 경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