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시작 된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적 성장, 그 찬란한 영광 아래는 1일 평균 14시간, 월 평균 372시간으로 세계 근로 기준법에 비교 했을 때 두 배 이상의 시간을 근무한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다. 타들어갈 듯이 뜨거운 용광로 옆에서 자재를 분주히 나르고,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전구 빛에 의해 뿌옇게 보이는 선박 내부에서 용접을 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에서 기계의 일부분이 된 마냥 반복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작업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초과근무에 대한 인센티브, 상해보험 적용 등의 근무혜택은 사치였다. 뭐 하나 좋을 것 없는 근무환경 속에서 이들은 왜 항의 하나 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며 살아왔을까?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이 책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은 유태인으로 1942년 당시 악명 높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3년 간 수용생활을 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이 책의 주요 핵심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는 현재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표제<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영문제목은 ‘Man's Search for Meaning :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로서 제목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강제수용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글은 그 동안 수없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비록 실제 일어난 일이더라도 그것이 한 개인의 체험과 관련된 경우에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수용소 생활을 하며 겪었던 주관적인 체험들을 서술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크게 강제수용소에서의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록한 1부, 이론적인 문제를 다룬 2부, 로고테라피 세계대회에서 명예회장의 자격으로 발표했던 내용을 간추린 3부로 나눠지는데, 1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서 작가는 로고테라피 적용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대부분 제시한다.

  이 책의 부제는 ‘당신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이다. 그런데 강제수용소 같이 자유가 없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침해당하는 장소에서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단 말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둘 이상의 요소가 존재하여 비교우위가 높은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권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제수용소에서 작가가 언급했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한 사람이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이 시련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선택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작가는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고 하면서 이것이 그 어느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인간의 선택권이라고 설명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著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는 인도 최북단 카라코람과 히말라야 산악에 끼어있는 고원 지대에 위치해 있는 라다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에 대해 기술한다. 커다란 산맥들 사이의 고지대 황무지이며 여름에는 햇볕에 탈 듯이 뜨겁고,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곳 거주민들은 자연에 감사하며 자급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산다. 이들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책의 중반부에 ‘테헤란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삽입한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을 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이 이야기를 넣으며 작가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선 피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것을 암시한다.

  이 책의 핵심인 ‘로고테라피(Logotheraphy)'의 ’Logos'는 그리스어로 ‘의미’를 뜻한다. 해석하면 ‘의미 부여를 통한 정신 치료법’인 것이다. 인간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일종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의미부여는 그 행동이 옳은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저자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통해 사람이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 행동이 바뀐다는 것을 발견한다. 수용소 안에서 생존했던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뛰어났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생존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갖은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의미부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서술한다. 첫 번째는 ‘책임감’이다. 그는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라고 하면서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시련’을 세 번째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제시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련이라는 것은 강제수용소나, 테헤란의 죽음 같이 피할 수 없는 시련을 의미한다. 수술이 불가능한 암 같은 불치병이 걸린 상황 또한 피할 수 없는 시련이다. 이러한 시련은 육신적으로 봤을 때 전혀 선택권이 없다. 하지만 이에 대처하는 태도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만약 ‘의사가 앞으로 3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으니 남은 인생 즐겨보자’라고 생각을 한다면 일반적으로 의사가 말한 ‘사형선고일’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나는 이미 나았어, 암이라는 것을 통해 내가 삶을 살면서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라고 하며 감사하며 생활한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확률이 더 높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시련은 그것의 의미 - 희생의 의미 같은 - 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고 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일에 매진하여 전력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에게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 즉 본인이 그 행동에 부여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1960년대 대한민국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노동자들……. 혹독한 근무조건에서도 이 악물고 일을 했던 그들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다. 삶의 모든 의미를 가족에 두고 가족에 책임을 느끼며, 자식을 사랑하고, 시련 속에서 자신이 희생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우리네 부모님은 그렇게 견뎌내셨던 것이다.

  저자는 시련에 대해 ‘피할 수 없는’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시련’이란 한쪽에서 본다면 비교적 멀게 느껴진다. 오히려 ‘피할 수 있는 시련’도 겪어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공부라는 것은 학생에게 있어서 피할 수 있는 시련이다.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학생의 자유이지만, 만약 공부를 선택하고 여기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게 된다.

  빅터 프랭클은<죽음의 수용소>를 통해 복잡한 현대인의 사회 속에서 아옹다옹 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번 해봐, 의미를 부여해봐, 새로운 것이 보일거야. 그래도 죽음의 수용소에 가는 것보단 낫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