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선생과 학생 등의 여러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지만, 나의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께서는 ‘토지를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 라는 조금은 남다른 기준을 가지고 분류하셨다. 마냥 수능공부에만 매달리던 지난 고등학생 시절 때 까지, 정확하게 말하면 토지를 읽기 전까지 나는 선생님께서 왜 저런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류하시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읽어보지도 않은 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교만한 일이라 생각한 나는 개강을 하고 도서관에 자주 가던 차에 토지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전권 21권이 내뿜는 그 위엄과 웅장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책의 두께와 박경리 선생님께서 일생을 바쳐가며 쓰셨다는 그 진가를 알고 있어서였을까? 1부 1권을 꺼내 집어 드는 순간 뭔지 모를 떨림과 반드시 소설을 끝까지 접해보리라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단한 각오와 설렘을 안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한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되는 순간인 첫 장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첫 시작은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 댁이라는 평범한 시작이었지만, 이곳을 통해 우리나라의 처참하고도 열렬히 지키려던 열정과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평사리 최고 양반댁이 베푸는 온정과 마을 사람들 서로가 도와가며 자기 집 일처럼 함께 거들어 주고, 최참판 댁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 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민족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정(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의 겨레, 하나의 가족임을 알 수 있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겠지만, 서로 있는 것을 나누어 주고 함께 하는 것을 통해 더불어 가는 삶이 자연스레 나타났던 것 같다. 요즘같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경쟁에서 서로 각자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이웃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개인주의적인 삶과 대비가 되며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우리의 조상들께서 훌륭히 지켜 오시고, 나누시고, 베푸시는 삶을 후손인 나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변형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한 마을을 지도하고 이끄는 참된 양반집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더 내 흥미를 더해갔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민족의 얼과 역사를 배울 수가 있었다. 하지만, 토지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바로 ‘사랑’인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신분과 시대의 상황이라는 무섭고도 힘든 짐을 짊어지고 도망친 별당아씨와 김환, 이들을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최참판, 하지만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김환과 최참판의 어머니인 윤씨 부인, 자신이 부모의 사랑을 왜 받지 못하고 자라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린 서희까지 이들은 모두 사랑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겪어야 했다. 사랑하기에 도망치고, 사랑하기에 찾아다니고, 사랑하기에 묵묵히 덮어두고, 사랑하기에 갈구하는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 후반부로 가게 되면 나라를 잃게 되고 이를 찾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우리 민족의 조상들과 위협하고 강탈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숭고한 사랑. 우리가 흔히 일상생활에서 연인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우고 투쟁하고, 지키려 하고, 나중에 해방이 되는 그 순간까지 사랑이라는 힘을 받으며 우리 민족은 굳건히 싸워왔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진행도와 박경리 선생님의 섬세하시고도 강한 필력의 매력에 매료되어 책을 무섭게 읽어 나갔지만, 점차적으로 박경리 선생님께서 진짜 말씀하셨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가슴 찡하고도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글 한 자, 한 자에 감동을 하며 읽게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외워지지 않던 역사가 이야기를 통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토지를 읽으며 많은 감정들을 느꼈지만, 이 감정들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견고히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마음에 어떤 메시지를 남긴다. 요즘도 사랑, 사랑, 사랑을 말하지만 이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사랑을 말하는 것 같다. 한 광고에서 출시된 이래로 지금까지 ‘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고 언급하는데, 이게 맞는 말 같다. 우리 민족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눈을 지녔으며 이 토지에서는 그 눈을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이야기를 통해 풀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최참판의 하나뿐인 혈육 최서희라고 할 수 있는데 최서희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 속에서 만일 지금의 내가 당시의 최서희였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면서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들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품 같은 토지가 서사하는 또 다른 내용인 것 같다. 서로가 시기와 질투, 갈등이 있는 상황가운데서도 어디에서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뜨거운 사랑을 베풀며 함께 어울려져 지금까지 한민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토지에는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과 많은 사건들과 많은 역사적 사실과 배경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이 모든 것의 기본에는 사랑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사랑하기에 무섭게 강탈하고, 사랑하기에 참고 기다리고, 사랑하기에 지키려 투쟁하고. 이 모든 것이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아닐까 싶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박경리 선생님이 정말 다시 한 번 대단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사랑이라는 자애로운 감정과 인간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본능적인 것을 다루면서 한 나라의 굴복과 다시 일어서는 역사적인 내용과 이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한 집안, 더 나아가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다루셨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결국에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랑이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 선조들이 이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후손들이 이어 가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큰일이라고 생각 되었다. 막대한 짐을 지어주신 하지만 이를 지어주지 않으셨다면 지고 가지 않아 앞으로가 어떻게 되어 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큰 깨우침을 주신 박경리 선생님 덕에 이를 짊어진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이 민족이 이어져 가는 것 같다. 사랑, 참으로도 쉽지만 어려운 것. 무엇이라 단언하여 정의내리기 어려운 것을 박경리 선생님은 책을 통해 이야기 하셨다. 단순한 사고로 토지를 그냥 읽어 내려간다면 한편의 이야기인 소설밖에 될 수 없지만, 우리민족의 뼛속깊이 배어져 있는 감정과 선조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했던 것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삶속에 적용시키며 그들의 행적을 밟으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눈물 흘리는 일이 된다면 이는 우리 역사의 획을 다시 긋는 그 전환점이 될 것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러할 우리나라를 이어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요즘 같이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범죄가 일어나고 두려워하는 사회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퇴색되어 가는 중에 박경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옛 선조들이 지니고 있었던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사랑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힘쓰셨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선생님께서 토지를 집필하시고 토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실 때 선생님의 참 뜻을 알았던 많은 이들이 진정으로 안타까워 하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눈물로 표했던 것 같다.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또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과제임을 인식 시켜 주신 박경리 선생님의 그 열정과 마음이 조선시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했던 우리 선조들의 행적들처럼 자신의 일생을 바쳐 연구하고 집필하신 토지로 나타난 것 같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글의 소중함, 그리고 글이 가진 힘과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일깨워준 토지와, 이를 꼭 읽어 보라고 하신 나의 국사 선생님께 가슴깊이 감사의 사랑을 전한다. 박경리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으신 국사 선생님께서는 이 깊은 진가를 알고 계셨기에 세상에는 토지를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로 나눈다고 하신 것 같다. 토지를 다 읽은 지금 그 숨은 뜻을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사랑을 아는 자와 사랑을 알지만 모르는 자를 말씀하신 것 같다. 토지를 읽은 후, 나는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아는 자’로 사람을 분류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든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