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1843년 뉴욕의 워싱턴 플레이스에서 Henry James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자유로운 정신세계의 소유자였던 부친 덕택에 태어난 직후 2년간 유럽으로의 가족여행에 동참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두 대륙의 문화와 전통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문학에 뜻을 두게 되었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워싱턴 스퀘어는 헨리 제임스가 1880년 발표한 소설로 부잣집 처녀인 캐서린(Catherine)을 둘러싼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캐서린은 아름답고 부유한 어머니와 지역의 저명한 의사로 추앙되고 있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아름다움도, 아버지의 명석함도 물려받지 못하고 오로지 착하기만하고 지극히 평범하게(어쩌면 약간은 못나게)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슬로퍼 박사는 첫 번째 아들과 아내를 잃고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딸 캐서린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아껴주지도 않는 아버지로 묘사된다. 그는 매우 명민하고 훌륭한 의사고 뉴욕에서 평판 받고 있으며, 그만의 삶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모리스 타운센드는 캐서린과는 사뭇 다른 너무나도 출중한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방탕한 생활로 가진 재산이 없고 일자리조차도 없는 탕자이다.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아버지 슬로퍼 박사의 반대로 끊임없는 갈등을 야기한다.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캐서린의 고모이자 슬로퍼 박사의 누이동생인 페니먼 고모이다. 그녀는 공상을 즐겨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여인이며, 다소 가볍고 저속하다 할 수 있는 말주변과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면모들은 캐서린과 모리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특히 캐서린이 겪는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캐서린은 아버지의 또 다른 누이동생인 올먼드 부인의 딸 메리언의 약혼파티에서 모리스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는 메리언의 약혼자인 아서 타운센드의 먼 친척뻘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로 캐서린을 첫 눈에 반하게 한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지극히 평범하기만한 주인공에게 모리스 또한 호감을 보이고, 페니먼 고모의 열렬한 성원아래 두 사람은 사랑을 싹틔우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캐서린은 연간 30000파운드의 재산을 물려받게 될 아주 부유한 여자이고, 모리스는 떠돌이 인생을 살아온, 가진 재산이라곤 한 푼도 없는 가난뱅이이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누이에게 얹혀살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캐서린을 향한 그의 저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든다. 슬로퍼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모리스가 캐서린의 재산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라 판단하여 둘의 사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슬로퍼 박사와 모리스의 줄다리기는 점점 팽팽해진다. 슬로퍼 박사는 캐서린의 보잘 것 없는 외모는 전혀 매력이 없다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모리스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재산을 좇는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또한 모리스가 캐서린의 평범한 외모, 착하고 순진한(약간은 멍청하게까지 보이는) 성품으로만 마음을 사로잡혔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막대한 재산은 모리스에게 있어서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외모가 매력이가 생각하는 슬로퍼와 경제적 가치를 매려이라 여기는 모리스, 과연 둘의 기준은 사랑의 진정성을 판단하기에 부합한 것인가 의문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이고 고귀한 이념에 너무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닐까. 캐서린은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특히 슬로퍼 박사, 모리스, 페니먼 고모)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간파하여 그녀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줄다리기를 한다. 페니먼 고모의 개입은 점점 적극적으로 변모하여 마치 그녀가 캐서린과 모리스의 어머니가 된 것 마냥 상상속에서 그들의 로맨스를 즐긴다. 그러나 슬로퍼 박사의 반대는 점점 심해지고 완강해진다. 또한 모리스도 캐서린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게 된다. 그들은 슬로퍼 박사를 설득하려 노력하지만, 결코 그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슬로퍼 박사는 캐서린이 모리스를 잊게 하기 위해 1년 동안 워싱턴 스퀘어를 떠나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지만 캐서린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모리스와 결혼하게 되면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리라 선언한다. 착한 캐서린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진에게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 여기며 재산을 포기하게 되고 모리스에게도 그녀의 뜻을 전한다. 하지만 모리스의 행동은 뜻밖에도 그녀에게 반전과 함께 엄청난 상처를 주게 된다. 모리스가 그녀를 떠나버린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캐서린이 아버지와 자신 때문에 결별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변명일 뿐 캐서린에게는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녀는 모리스와 헤어진 이후에도 몇 번의 결혼기회가 있었지만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혼자 살아가게 된다. 시간이 흘러 노년한 슬로퍼 박사는 병으로 죽게 되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캐서린에게 모리스와 결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캐서린이 끝내 약속하지 않자 그는 결국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하고 그녀에게는 약간의 재산만 남겨 주게 된다. 캐서린은 사랑하는 연인과, 그녀를 별로 사랑해주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각각의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결말에는 페니먼 고모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언급해야겠다. 그녀의 헛된 상상력은 결국 캐서린의 인생을 망가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결혼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여기서 이해란 마음으로부터의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결혼정보업체는 이젠 너무나 당연한 부분이 되었다. 남성에게는 경제적 능력을, 여성에게는 외모적 조건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면서 점점 결혼이라는 것이 수식과 같은 이해타산적인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마땅히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는 결혼에서 부모의 기대치와 요구사항은 사랑보다 우선순위의 조건으로 여겨짐으로써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말의 의미가 현대에서는 많이 퇴색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필자가 언급했듯이 과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슬로퍼 박사와 모리스의 관념들은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사랑’이라 칭하여지는 고귀한 감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슬로퍼 박사는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 사고만으로 캐서린을 전혀 현명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여인이라 치부해버린다. 그는 자신이 당연스럽게 지니고 있던 가치를 가지지 못한 캐서린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그의 이기적인 면모는 재산에 관해서도 드러난다. 딸아이의 사랑을 존중해주고 단 한번이라도 딸의 마음을 진실로 들여다보는 아버지였더라면 그는 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모리스에 대한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모리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아름다운 외모에 명민한 감각을 지녔으나 캐서린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만은 지니지 못했다. 그 역시 자기위주로만 그녀를 판단하여 캐서린의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다. 페니먼 고모 역시 자신이 이루지 못한 환상을 대리만족하기 위한 도구로 캐서린의 결혼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캐서린을 제외한 중심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타인을 판단하며 그 견해를 절대 굽히지 않음으로 인해 또렷한 경배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인품과 장점을 지닌 캐서린을 불행에 빠뜨린다. 캐서린은 존경해 마지않는 아버지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혹하고 냉철한 판단의 대상이 될 뿐 무조건적인 애정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이런 편파적인 애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기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을 빙자할 뿐 그 의미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캐서린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사람을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놀랍도록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자신을 내어주고, 사랑을 위하여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인물이다.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한 인물은 캐서린이 아닐까 싶다. 즉, 그녀가 하는 ‘이타적 사랑’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의 숭고한 참의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이러한 부분은 부족한 외적 매력이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에게도, 남자에게도, 고모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랑의 의미가 너무나 퇴색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우리 각자의 사랑은 ‘이기적 사랑’인지 아니면 ‘이타적 사랑’인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대부분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도무지 주인공답지 않는 외모를 지닌 캐서린 이지만, 내면적 모습은 주인공 일 수밖에 없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상처에도 굴복하거나 소란스러워지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며 혼자 모든 것을 속으로 삭히는 캐서린. 그 어떤 소설을 막론하고 가장 슬픈 결말의 여주인공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인 ‘워싱턴 스퀘어’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부의 상징’을 타나내는 것 같지만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슬로퍼 박사에게는 죽어서도 지켜내야만 하는 그의 전부를, 모리스에게는 갖고 싶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대상을, 페니먼 고모에게는 안주하고 싶은, 버려지고 싶지 않은 그녀의 현실을, 그리고 캐서린 에게는 죽는 날까지 보듬고 살아가야 할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 우리 각자의 ‘워싱턴 스퀘어’를 내려놓고 이타적 사랑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상처로 남게 될 워싱턴 스퀘어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내면을 가진, 그렇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슬픈 한 여인을 완벽하게 묘사함으로써 1880년의 소설이라 믿지 못할 만큼 선명한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다. 힘 있고 아름다우나 결코 쉽지만은 않은 작가의 문체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으로 비집고 들어가 마치 기계로 측정한 것처럼 명료하게 인간을 표현해낸다. 100년도 더 지난 소설에서 읽기는 것은 전혀 낡지 않았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사랑의 가치와, 결혼과 인생에 대한 현인의 철학이 소설 곳곳에 배어져 나와 희미한 향내를 뿜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캐서린의 향기처럼.

*작가 설명 출처 : 워싱턴 스퀘어, Henry James作, 임정명 옮김